정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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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 … 총명탕(聰明湯) (4)수험생 총명탕 2018. 8. 22. 07:00
재수 삼수는 기본 : 공부 또 공부 임금의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돈 없고 배경 하찮은 시골의 가난한 선비는 오로지 공부만이 살길이었습니다. 문과 급제는 어려운 형편을 벗어나 입신출세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험한 급제와 장원의 길을 향해 오로지 과거 공부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장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과 돈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문과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소과에 합격하고도 조선 전기에는 8년, 후기에는 10년 정도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일찍 공부할 수 있는 권세가나 부호들 자제들에게는 유리했습니다.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8세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급제하기도 어렵고 장원급제하기도 더 어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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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능동·동탄·병점·오산 수험생보약 한의원 : 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 … 총명탕(聰明湯) (3)수험생 총명탕 2018. 8. 21. 07:00
영광의 나날 : 장원이 누린 온갖 혜택 조선왕조에서는 장원급제자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우대했습니다. 문과 시험이 끝나면 방(榜)을 붙여서 합격자를 발표하고, 급제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 축하 의식이 베풀어졌습니다. 우선 경복궁 근정전 증에서 합격 증서를 주는 방방의(放榜儀)가 행해졌습니다. 임금이 용상에 앉고 문무백관이 늘어선 가운데 합격자들이 차례로 왕에게 사배례(謝拜禮)를 올린 다음, 합격증인 홍패(紅牌)와 어사화, 일산(日傘)(햇볕을 가리기 위한 큰 양산) 등을 하사받았습니다. 방방의가 끝나면 의정부나 예조에서 행하는 축하연인 은영연(恩榮宴)이 시작되었습니다. 문무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급제자들이 갑, 을, 병과 순으로 앉으면 풍악이 울리면서 기생들이 술을 권하고 광대들이 재주를 부렸습니다. 은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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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 … 총명탕(聰明湯) (2)수험생 총명탕 2018. 8. 20. 07:00
과거시험 출제부터 채점까지, 시험장 풍경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여러 가지가 시도되었습니다. 그런 임무를 맡은 관원들이 생소할 수 있으나 그런 직책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험문제는 과거를 보는 날, 새벽 시험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의해서 출제했습니다. 기출문제나 명이나 청나라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 주상에 대한 문제는 제외했습니다. 대과의 초시는 서울과 지방에서 실시했습니다.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入門官)은 시험 당일 새벽에 문을 열고 기다리다가 녹명책(錄名冊)(응시자명부)을 보고 호명하여 응시자들을 시험장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순조 때는 응시자가 너무 많아 시험 전날 저녁부터 호명하여 그다음 날 아침까지 입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 번 들어간 응시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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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 … 총명탕(聰明湯) (1)수험생 총명탕 2018. 8. 19. 07:00
조선 시대의 과거시험은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어 시행되었고 문과는 다시 대과와 소과로 나뉘었습니다. 소과는 대과 응시를 위한 예비시험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생원·진사시 또는 사마시라고도 불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대과를 보통 문과라고 했습니다. 대과는 3단계 과정을 거쳐 선발 인원을 추렸습니다. 과거시험은 정기시험도 있었고, 왕실에 경사가 있을 경우 시행되는 시험도 있었으며, 왕이 지방 순방시 치러지는 시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도 있었습니다. 시험이 치러지지 않는 해도 있었습니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국가의 정책 때문에 양반들은 무과보다 문과를 더 선호했습니다. 이에 따라 문과는 조선 시대 과거의 꽃이라 할 만큼 중요시되었고, 문과 급제는 곧 가문의 영광이며 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