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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힘들게 양반다리로 앉아서 식사를 할까요?
    여울다이어트 2018. 7.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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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아파트가 주거형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방 안에서 밥상 주위에 앉아서 식사하기보다는 부엌에 식탁과 의자를 놓고 식사를 하는 형태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한정식집이나 시골 외갓집이나 본가명절에 가게 되면 어김없이 밥상 주위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식사를 하게 됩니다.

     

     

    한국을 방문해 한식 음식점의 방에 앉아서 외국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겉보기에는 맛있게 음식을 먹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리에 쥐가 나서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통용되는 식사 자세는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익혀온 일종의 사회적 습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식사 자세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주거형태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옥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나중에 아파트에 살게 되더라도 거실에 교자상을 펴놓고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주거 환경은 식사 자체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 상류층의 식사 자세는 매우 특이했습니다. ‘트리클리니움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긴 의자에 두세 명씩 자리를 잡고서 왼쪽 팔꿈치를 베개에 괴고 엎드려 식사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했던 엎드려서 먹는 식사 자세는 기원전 7세기 초에 고대 로마의 상류층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명절 TV에서 하는 벤허또는 쿠어바디스등의 외국 특선 영화를 보면 로마 상류층들이 엎드려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카톨릭이 국교로 선포된 이후에 식사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중국이나 몽골, 아랍 등의 유목민들은 생활 자체가 이동이 빈번하다 보니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가마솥에 음식을 한 후 그 주위에 빙 둘러 앉은뱅이 의자에 앉거나 또는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간이 식탁을 두고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의자에 앉는 오늘날의 중국 한족의 식사 자세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당나라 이전만 해도 지배층은 의자 없이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공자도, 맹자도, 유방도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상 문화적 융합이 가장 왕성했던 당나라 때가 되면 좌석을 길게 만든 장의자가 지배층의 식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식사 자세와 유사한 모습이 명나라 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지배층은 삼국 시대고려 시대에 중국 대륙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가 빈번했습니다. 심지어 고려 말에는 원나라의 지배 아래 100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보면, 적어도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의 지배층은 당나라 이후 중국 대륙의 지배층처럼 장의자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 때 식사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에서 주인손님 두 사람은 음식이 차려진 다리가 높은 식탁을 각각 받았습니다. 그들이 앉은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으로 호상이라고 불리던 앉은뱅이 의자가 아니라 다리가 달린 높은 의자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좌탑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때의 침대 크기의 평상을 가리킵니다. ‘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이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손님의 숫자가 늘면 이 탑의 개수도 늘려나갔다고 합니다. 간혹 TV에서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를 볼 때 이런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 앉아서 식사를 할 때의 자세는 어떠했을까요?

     

    넓지 않은 평상 위에 두 명만 앉았다고 했으니 신발을 벗고 에 올라가서 다리를 접고 앉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에서 효과적으로 앉으려면 다리를 어떻게 접어야 좋을까요?

     

     

    일본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으면 공간 활용이 가장 좋습니다. 이 자세가 불편하면 불교의 승려들이 수도할 때 취하는 자세인 가부좌로 앉을 수도 있습니다. , 오른발의 발바닥을 위로 올려서 왼편 넓적다리 위에 얹고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얹는 가부좌의 앉음새 말입니다.

     

     

    가부좌의 앉음새는 책상다리 자세와 무척 비슷합니다.

     

    그런데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 사대부들이 가부좌자세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성리학자들이 불교에서 유래된 앉음새를 그대로 취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고려 때부터 이런 앉음새가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성리학에서는 가부좌와 비슷한 앉음새에 대한 논의가 없었을까요?

     

    성리학을 완성한 송나라 주희가 선비가 공부할 때 앉는 자세에 대해 <궤자설>에 밝혀놓았는데 이것을 퇴계 이황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주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펴서 앉는 자세를 라고 불렀고,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다리를 포개어 조금 편안히 앉는 자세를 라고 불렀습니다.

     

    유자, 즉 선비가 심신을 단속하여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앉으려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의 방식으로 앉아야 한다는 것이 주자의 주장입니다. 그렇다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의 방식을 두고 주자가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선비들은 의 앉음새를 높이가 낮은 책상에서 책을 읽을 때 앉는 자세라 하여 반좌라고 했습니다. 당시 선비들에게 반좌선비다움을 나타내는 자세였습니다.

     

     

    18세기 이후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청나라에 다녀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베이징에서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중국인이 쓰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또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중국인들처럼 신발을 신고 실내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이들이 조선에 돌아왔을 때 언제 그랬느냐 싶게 바로 신발을 벗고 실내 생활을 하며 책상다리 자세로 앉아 책도 보고 식사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현의 말과 행동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조선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의좌는 결코 예에 어울리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성리학자들은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는 자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퇴계의 책상다리 수신론온돌의 확산으로 인해 책상다리 자세가 일상화됩니다. 그런데 요사이 사람들은 퇴계가 말했던 책상다리 자세인 반좌양반다리자세라도 부릅니다. ‘양반다리라는 말은 1973223일 자 <동아일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이 말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즈음에 이미 학교나 사무실에서는 대부분 높은 책상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상다리라는 말이 앉음새를 일컫는 표현으로서 대표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책상다리양반다리라는 말로 대체되었을 것입니다.

     

     

    구들장 온돌에서 동파이프 온돌로 바뀐 한국인에게 책상다리의 앉음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식사 자세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높은 식탁과 의자를 갖춘 한식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의자에 앉게 된 한국인은 그 좁디좁은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 자세를 취하는 곡예를 펼쳤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들 수 있지만 그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중국 음식점이나 한식 음식점에서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책상다리로 앉으려고 애쓰거나 의자가 좁아 한 발만이라도 벗고 의자 위에 얹어놓고 식사하는 분들을 목도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식사 때 신발을 벗고 싶은 욕구와 책상다리 자세로 식사를 해야 편안함을 느끼는 오래된 몸의 습관 탓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더 전인 1911년 조선을 여행했던 성베네딕트 수도회의 독일인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는 당시 조선인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많은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식사 대접을 받은 그들은 높이 30cm도 안 되는 소반에 책상다리 자세에 익숙하지 않아 이리저리 앉는 자세를 고쳐가며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외국인이라면 그 자리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음식을 맛보는 일보다 쥐가 난 다리를 해결하는 일이 더 급했을지도 모릅니다음식점이나 가정집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소반에 음식을 차려서 방에 앉아 식사를 했던 100년 전 조선에서 조선 음식을 먹었던 외국인의 고통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초입, 세계화된 한국의 한식 음식점에서도 여전히 이런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단지, 일본인, 베트남인, 아랍인만이 이 고통에서 다소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식사를 해왔기 때문에 한식 음식점의 좌식 식탁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좌식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대접한 한국인 앞에서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주영하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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