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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 … 총명탕(聰明湯) (4)수험생 총명탕 2018. 8. 22. 07:00반응형반응형
재수 삼수는 기본 : 공부 또 공부
임금의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돈 없고 배경 하찮은 시골의 가난한 선비는 오로지 공부만이 살길이었습니다. 문과 급제는 어려운 형편을 벗어나 입신출세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험한 급제와 장원의 길을 향해 오로지 과거 공부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장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과 돈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문과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소과에 합격하고도 조선 전기에는 8년, 후기에는 10년 정도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일찍 공부할 수 있는 권세가나 부호들 자제들에게는 유리했습니다.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8세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급제하기도 어렵고 장원급제하기도 더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삼수, 사수가 아니라 수십 수까지 장수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과거를 위해 지방에서 상경해서 수년을 서울에서 지내며 과거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려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노량진이나 신림동 학원이나 고시원에서 명절도 잊은 채 내일의 꿈을 향해 피땀 흘리는 상황이 조선 시대에도 똑같이 벌어졌습니다.
문과에 급제하고 장원을 차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문과의 예비고사라 할 수 있는 소과에 합격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소과의 초시 경쟁률이 15:1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허수 지원이 없다는 것도 감안한다면 경쟁률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뒤 치러지는 복시의 경쟁률은 7:1이지만 겨루는 상대들이 쟁쟁하기에 실로 어려운 관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과도 아닌 소과에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퇴계 이황과 오성대감 이항복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합격했습니다. 이황은 23세에 서울에 올라가 과거 공부를 했는데 소과에 세 번이나 떨어졌고 27세에 비로소 진사시에 합격하고 33세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항복은 어렸을 때 신동이라 칭송받았지만, 진사시의 초시에만 합격하고 복시에서는 떨어져 성균관에 입학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성균관의 비정규 학생, 즉 청강생인 기재생으로 들어가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는 성균관에서 5년간 공부한 끝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랐습니다.
급제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다 보니 개인의 능력과 아울러 30대 중반까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했습니다. 중간에 혼인이라도 하게 되면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공부에 매달려야 했으니 경제력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의 양반 집안이나 명문가의 자제들은 이런 여건이 갖춰져 비교적 편하게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겠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한 지방의 가난한 선비들은 그야말로 실력만 믿고 이를 악물고 공부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장원급제의 영광을 차지한 선비들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나는 격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으로서 출세하는 길은 오로지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과거 응시생이 많아져 치열한 합격 전쟁이 벌어졌고 명문가의 부모들은 자식을 합격시키기 위해 다양한 연줄이나 법에 어긋나는 방법까지 동원했고 시중에서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먹였습니다.
조선은 양반 위주의 신분 사회였고, 양반 중에도 주요 문벌 기문이 이끌어나간 사회였습니다. 문벌을 유지하려면 요직을 차지해야 했고, 요직을 차지하려면 문과 급제, 그것도 이왕이면 장원급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대과를 준비하고 치르는 시기에는 때에 맞춰 수시로 ‘총명탕(聰明湯)’을 복용하게 했습니다.
장안에서 총명탕으로 유명한 의원에서는 약이 밀려 보름이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방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방 유력가 집안 자제들도 수시로 ‘총명탕(聰明湯)’을 복용했고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도 온 정성을 쏟아 약 한제라도 먹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만큼 과거시험은 그 집안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사활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 절절한 불공의 물결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의 불교 탄압도 장원급제를 향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장원을 위하는 길이라면 사람들은 나라의 눈을 피해 불공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많은 부모님이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는 모습은 매년 있습니다. (끝)
-정구선의 조선 출셋길 ‘장원급제’ 중에서-
총명탕과 초콜릿 첨가 총명탕의 학습 및 기억장애에 대한 효능 비교 연구
소개하고 싶은 경희여울한의원 수험생·학생 보약(총명탕) 치험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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